December 11, 2019

부모가 되다.

부모가 된다는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 의미를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조금씩, 천천히, 여유있게 찾을 생각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재미있을 거 같아 기대된다.

부모가 되다.

2018년 4월 말, 우리 아이가 태어났다. 공식적으로 우리는 부모가 된 것이다. 당시에는 이게 어떤 의미인지 심각하게 와닿지 않았다. 지금 현 시점(2019년 12월)에서 돌아보면 부모가 된다는 의미는 삶이 통째로 변한다는 뜻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이전만 하더라도 우리 부부의 일상은 각자가 싱글로 살았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의 스케줄이 있었고, 아내는 아내대로의 스케줄이 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스케줄을 공유하고, 서로의 사정을 봐주면 그만이었다.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싱글일때보다 상대를 더 배려하고 신경쓴다는 게 전부였다.

아이가 태어난 뒤로 우리가 예상했던 부분보다 많은 일상이 변했다. 모든 일상의 중심에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가 최우선 순위였다. 100일 이전 당시를 떠올리면, "이 아이가 내 아이구나."라는 행복한 생각보다는 "이 조그만 애를 어떻게 돌봐야하나."라는 생각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아내는 모유수유를 진작에 선택했었고, 최대한 아내가 모유수유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거의 모든 가사노동은 내가 담당하였다. 나로서는 크게 힘이 들어가는 부분이 아니었다. 신혼일 때에도, 아이를 임신한 때에도 거의 모든 가사노동은 내가 했었기 때문이다.[1]

물론 "에이 설마? 그렇게 안 할수도 있잖아.", "도우미를 쓰면 되잖아. 정부에서 제공하는 아이돌보미 서비스도 있다는데 그런 거 쓰면 편리하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가끔 신생아가 돌보미에게 폭행당했다는 비극적인 뉴스들을 접하면 그럴 수가 없다. 만약 내가 뉴스에 등장하는 피해부모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 나는 미쳐버릴거 같다. "뉴스에 등장하는 부모가 그저 불운했던 거야. 나만 아니면 되는거잖아."라는 끔찍한 생각을 하기도 싫다. 여튼 그렇다.

지금도 크게 변한 건 없다. 새로운 일정을 고민할 때 아이의 컨디션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 현재 시점에서는 아이가 걷고, 뛰고, 의사표현을 조금씩 하기에 아이의 의견을 묻고 조정할 수 있는 여지들이 생겼다는 것에 조금씩 위안을 느끼고 있다.

나는 여느 아빠들과는 달리 아주 운이 좋게도 아이가 태어나서 성장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아이가 아내의 뱃속에서 나오는 당시의 모습도 생생하며,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두 발로 섰을 때, 강아지 계단을 밀고 다니면서 조금씩 걷기 시작했을 때, 아지[2] 를 잡겠다며 빠르게 기어가기 시작했을 때, 혼자 걸어다니기 시작했을 때, 제자리에서 두 발로 점프하는 게 아니라 한 발로 먼저 뛰기 시작했을 때,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했을 때 등등 그 과정들을 본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아이가 '아빠'라고 불렀을 때는 큰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사람마다 크게 와닿는게 다르겠지만 아이가 '아빠'라는 단어를 말하기 위해서 흉내내는 과정들을 옆에서 계속 봐왔기에 정작 아이가 '아빠'라고 제대로 말을 했을 때는 이제 조금씩 단어를 익히고 있구나 정도였다.

그리고 나중에 아이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점이 되면 아이에게 "너, 예전에는 이랬어. 기억해?"라고 보여주기 위해 아이에 대한 기록[3]들을 남기고 있다. 중요한 것은 아빠인 내가 아이를 위해 소중한 기록을 남겼다는 게 아니다. 그 당시에 아이와 내가 함께 했고, 그 순간들을 내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야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어렸을 당시, 내 아버지는 먹고 살기에 바빴다는 이유로 나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이 없었다. 우리 사회의 대다수 아버지가 해당되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대다수가 그렇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렇기에 자식들과 서먹한지도 모르겠다.

여튼, 한 아이의 부모가 되었고, 그 아이와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아갈 생각이다. 그리고 그 과정들을 계속해서 기록할 것이고, 난 너의 부모고, 너는 내 자식이야라는 상하관계를 강조하는 게 아닌, 너가 성장하는 데 있어 의지할 수 있는, 내가 더 많은 경험을 했기에 내가 경험한 부분에 있어서는 선택지를 추천해 줄 수 있는 파트너가 되고 싶다. 아이와 내가 서로 다른 사람이고 그렇기에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는 그런 모습으로 살고 싶다.

뭔가 치밀한 계획으로 아이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갑작스럽게, 운 좋게 부모가 되었지만 이왕이면 친구같은 부모로 살 계획이다.

끝.


  1. 가사 노동은 아내가, 돈을 버는 것은 남편이라는 사회의 관념을 거부한다. 실제 가사노등을 해보면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 단, 며칠만 아내 대신 가사노동을 해보면 그 힘듦의 정도를 바로 알 수 있다. 다만, '와 정말 힘드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아내에게 미루겠다는 생각은 하지말자. 내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한다. ↩︎

  2. 우리 부부가 키우는 말티즈 이름이다. ↩︎

  3. 구글 포토를 통해 아이가 태어난 시점부터 지금까지 월별로 백업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기록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