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지탱하는 힘
"아침에 군만두 몇개 먹고 싶어?"
"100개"
요며칠 아이가 아침으로 즐겨 먹는 메뉴는 군만두이다. 아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숫자인 100이라는 숫자를 말하지만, 이내 5개라고 고쳐 말한다. 포장지 뒤에 나와있는 방법대로 식용유 2~3숟가락을 팬에 두른 후 중불에서 1분 예열 후 5개의 냉동 군만두를 6분에서 7분 정도 굽는다. 맛있는 기름 냄새와 연기가 방까지 풍기면서 공기청정기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힘차게 돌아간다.
맛있는 냄새로 아이가 일어날 시간을 알릴 요량으로, 일부러 소리를 만들진 않지만 자연스럽게 나는 소리를 굳이 막진 않는다. 오히려 더 분명하게 소리를 내어 방안을 울려퍼지게 한다.
아이는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머리에 지은 떨어지지 않는 까치집과 함께 이불 위를 뒹굴뒹굴 하더니 소란스럽지 않게 거실로 나와 대방석에 다시 눕는다.
"엄마, 나 만두."
밤새 무서운 꿈을 꿨는지 신나는 꿈을 꿨는지 여튼 꿈을 꾼 거 같은 살짝 부은 눈도 제대로 뜨지 않았지만, 일어나자 마자 만두를 찾는다. 군만두 기름 냄새 공격 전술이 먹혔다. 그렇게 요구르트 2개와 만두로 아침을 시작한다.
아이와 등교를 함께 한 후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미용실에 갈때마다 숱이 많아서 좋겠다는 얘기 좀 들은 3인이 사는 집인지라, 미용실을 갈때가 되어서 그런지 1개만 떨어져 있어도 무시할 수 없는 가늘고, 길고, 까만, 가끔은 흰색도 섞여 있는 머리카락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어, 매트까지 꺼내는 청소는 지난 주말에 했으니 청소기 돌리기는 귀찮고, 청소포로 대충 먼지와 머리카락을 잡아낸다. 차에도 하나 두고, 여행갈때도 한번씩 챙겨가는 돌돌이가 있어야 마무리가 된다.
시끄러워 알림 소리를 꺼둔 오픈 카톡방이 아니면 알림 올 일이 많이 없는 카톡이 '카톡' 울린다. 소소한 할일이 추가되는 소리다.
[OO 도서관]
❏ 대출 도서 연체 안내 ❏
대출중인 도서가 연체중입니다.
아래 내용을 참고하시어 연체 도서를 반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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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체 도서명: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괴테와 마주앉는 시간
■인생을 배우다: 소소한 일상에서, 사람의 온기에서, 시인의 농담에서
■미라클 베드타임 = Miracle bedtime: 아이의 미래가 달라지는 기적의 취침 습관
다 읽지 못했지만, 괴테가 문제를 대하는 태도, 조금 정확히 말하면 괴테 할머니, 전영애 선생님이 바라본 괴테의 몇 문장을 통해 잠시나마 위로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인간은 지향(志向)이 있는 한, 방황한다”
“Es irrt der Mensch, solang' er strebt”
- 독일 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파우스트》 중 '천상의 서곡'에 나오는 구절
5일이나 연체된 대출 도서 반납 독촉 알림을 무시하기엔 마음이 편치않아, 에코백에 연체된 도서 3권과 갑자기 읽고 싶은데 옆에 없으면 아쉬울 거 같아 다행히 가방 무게에 크게 기여하지 않은 얇은 두께의 주황, 노랑, 분홍의 봄 색깔이 책 표지를 채운 김정선 작가님의 《열 문장 쓰는 법: 못 쓰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도 함께 챙겨 동네 도서관으로 향한다. 출발하면서 'Pokémon GO' 앱을 열어 아이의 파트너인 루카리오를 베스트 파트너로 만들기 위해 아이가 등교길에 부탁한 루카리오에게 간식을 주기 위해 바나나 3개를 던져준다.
무거웠지만, 조금이라도 더 가지고 있으면 한 줄이라도 더 볼까하는 기대에 에코백을 옆에 끼고 도서관에 오면 주로 앉는 종합 자료실이 있는 3층의 바라보며, 엘리베이터를 탈까하는 마음을 3초 정도 가져봤지만, 열감기에, 어지러움으로 고생한 시간들이 생각나서 마음을 고쳐먹고 계단을 오른다.
이상하게 도서관에 오면 고프지 않았던 배가 고프고, 출출해진다. 짐을 내려놓고, 같은 층에 있는 휴게실에 가서 바리바리 들고 온 견과류 2봉지를 오도독 먹고, 녹은 냉동 망고를 후루룩 마시고, 무겁다고 놓고 온 텀블러에 달달한 오렌지 껍질과 계피를 블렌딩한 홍차 한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망고를 담아 온 그릇에 시원한 정수기 물 한 모금 마시고 자리로 돌아간다.
랩탑을 꺼내 이것저것 하다보니, 아이의 하교 시간이다. 후다닥 정리를 하고, 무겁게 가지고 온 에코백을 다시 끼고, 도서관 1층으로 향한다. 가급적이면 굳이 사람이 필요하지 않은 일에는 무인 시스템을 이용하는 편인데, 연체된 도서다보니, 키오스크로 반납이 되지 않아 안내 데스크로 가서 반납을 부탁드린다. 언제부터 다시 빌릴 수 있다는 안내를 듣는 둥 마는 둥 부지런히 도서관을 나선다.
이런, 도서관을 나왔는데도 왜 출출한 것인가. '일상을 돌려받고 싶은 사람들' 로 인해 비가 와서 몸시도 추웠지만, 기쁨의 그날에도 꽈배기를 접해서 그런지 오늘도 설탕가루 솔솔 뿌린 쫄깃하고 달달한 꽈배기가 땡긴다. 꿀꽈배기 가게까지 가자니 아이와 약속한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이 너무 촉박해질 거 같다.
마침 도서관 앞에는 몇주전 맛있게 먹은 쌀핫도그 가게가 있는데. 곧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먹을까 말까, 1500원의 간식비를 아낄까 하는 생각을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며 10여초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내 안의 크고 작은 욕구는 적당히 흘려보내고, 무시해야 큰 딸로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참는게 익숙해서, 1500원의 간식비도 아껴야한다는 생각이 습관적으로 들었다. 오늘은 그냥 먹자. 1500원 아낀다고 돈이 모아지지도 않더라. 차라리 돈을 벌 궁리를 더 하자. 설탕 솔솔, 새콤한 케첩까지 뿌린 쌀 핫도그 하나에 별별 생각을 다 담으며 2개의 횡단보도를 건너 가게에 들어간다.
"핫도그 1개, 아니 2개 주세요. 포장이요"
혼자 몰래 먹을까 하다가, 얼마전 발견한 동네 신상 놀이터에 걸어가며 아이와 도란 도란 이야기 나누며 맛있게 핫도그 먹을 생각에 흐뭇해져서 2개를 주문했다. 아이가 먹을 핫도그 주문에는 참을까 말까하는 고민이 없다.

그렇게 평소보다 1시간 정도 일찍 하교하고 놀이터에서 충분히 놀자는 계획보단 늦었지만, 시소, 그네, 짚라인, 미끄럼틀을 알차게 타고, 마지막 동네 누나들이 먼저 타고 있어, 원하는 만큼 못탄 짚라인 2번을 더 탄 후 마트로 향한다.
아이는 자신이 놀아줘야하는 동생은 필요 없지만, 엄마는 노는 자신을 지켜봐야한다며 벤치에 앉으라고 하고는 정전기로 머리카락이 미친 박사님의 스타일이 되어도 뭐가 좋은지 깔깔거리며 미끄럼틀을 오르락 내리락 앞으로 뒤로 타고 논다.
지난주 내내 먹었는데도, 자신은 카레가 좋다고, 또 해달라고 해서 짜장 소스를 사러 마트로 간다. 아이는 짜장 소스와 카레를 헷갈려한다. 며칠 전 활동적인 아이 둘을 키우며 한식, 중식 조리사 자격증까지 딴 부지런한 동생에게 짜장소스 맛있게 하는 법을 물어본 후 춘장이 들어가야한다는 말을 듣고, 생애 처음으로 춘장을 산다. 요리는 잘 못하지만, 요즘은 양념들이 잘 나오니까 믿어본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동생이 알려준대로 춘장도 설탕 넣고 볶고, 어설픈 칼질로 양배추 듬뿍, 새송이 버섯, 양파 등도 썰고, 이번엔 돼지 고기 넣는 것도 놓치지 않고 한끼의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아이는 짜장소스에 밥을 비벼주고, 남편과 난, 손맛 좋은 엄마가 해주신 양념 돼지 고기를 볶아 불면증으로 고생했다는 내 얘기를 듣고는 식사때마다 상추를 먹어야 한다는 엄마의 따뜻한 잔소리에 향도 맛도 진하지 않은 상추를 싸서 야무지게 한끼를 잘 먹는다.
그렇게 저녁 9시 취침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눈꺼풀이 무거워져 문장이 끝맺어졌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오늘 하루를 버틴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본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