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친절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친절함이 아이를 키운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는 한글을 읽고 쓰는데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다. 자신의 이름과 '공룡', '지우','리자몽' 등 자신이 좋아하는 몇 단어 정도만 익힌 정도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충분한 수면 시간 확보를 위해 9시 취침을 연습하고 있다. 저녁 9시에 잠들기 위해서는 저녁 8시부터 동화책을 함께 읽으며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함께 읽을 동화책 선택은 아이의 몫이다. 입학식 이후 아이가 즐겨읽는 책은 '초등학교 입학을 축하합니다'라는 제목을 가진 동화책이다. 자신의 상황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그런지, 한달 내내 매일같이 읽어서 지겨워진 엄마는 아이에게 다른 책을 보자고 제안해보지만, 엄마의 제안이 귀에 들어올리가 있나.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의 선정 도서, 아니 오늘도 선정 도서가 된다.
같은 동화책 읽기가 지겨워진 엄마는 아이에게 '한글을 알게 되면 네가 보는 세상이 더 넓어질 거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평소와 다른 방법으로 책 읽기를 시도한다.
"그럼 오늘은 네가 이 책을 읽어줄래? 그동안 엄마가 읽어줬으니, 오늘은 네가 책을 읽어줬으면 좋겠어."
그렇게 아이에게 퀘스트(수행해야 할 임무)를 제안했다. 엄마의 제안에 아이는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었지만, 시작은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동화책의 제목부터 막힌다. 책 제목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글자를 보고 읽으려니 버벅거리며 첫 글자부터 모르겠다고 했다. 어렵다며 한 달 내내 재미있게 읽던 동화책을 덮어버린다.
'어, 어, 이게 아닌데...'
분위기 전환을 위해, 오랜만에 ChatGPT의 도움을 받는다.
"우리 아이가 한글이 익숙하지 않은데, 한글이 무엇인지 쉽게 설명해줄 수 있어?"
"아이에게 한글을 설명할 때, 아주 간단하고 재미있게 다가가는게 중요해요. 이렇게 설명할 수 있어요.
한글은 무엇일까요?
...
누가 만들었나요?
...
한글은 어떤 모양일까요?
...
어떻게 써요?
...
한글의 좋은 점은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거예요! 세종대왕이 우리가 쉽게 읽고 쓸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이렇게 간단히 설명해주면, 아이가 한글에 대해 조금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을거예요. "
인공지능 로봇의 딱딱하지만, 친절한 설명을 들은 후 아이는 바로,
"한글을 알려줄 땐, 친절(친근을 친절로 들은 듯하다)하게 해줬으면 좋겠어. 엄마가 한글 숙제할 때 목소리를 크게 하면 기분이 안 좋아."
'아... 이건가...'
청개구리 성향이 있는 나는 특히나, 누군가 나에게 집중하라고 목소리를 크게 하면 더 안들리는데, 아이도 그랬겠구나, 한글 숙제할 때 집중을 안한게 아니라 몰라서 그런건데, 그걸 엄마는 집중을 안한다고 지레짐작하고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친절하지 않게 대했구나.
예상하지 못한 아이의 말에 한동안 얼떨떨했다.
아이가 '친절하게 해줬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듣고 나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특히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날카로운 말이나 행동을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개인적인 반성에서 시작된 생각은 여느 보통의 주말 오후 광장에서 경험한 작은 친절을 더 생각나게 한다.
작은 친절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제가 아이에게 친절의 중요성을 깨달았듯이,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친절을 실천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 많이 오는데 멀리까지 꽈배기 나눠주러 오셔서 감사합니다! 매번 쫩쫩 잘 먹고 있었는데(?) 기수하는 날엔 아무래도 다 못 찾아먹거든요
감사히 꼭꼭 씹어먹겠습니당
계정을 못 찾았어요...
일상을 돌려받고 싶은 사람들
일돌사 꽈배기 감사해요'
트윗 중 하나
내란 사태로 일상에 지장이 생겨 뭐라도 하자는 데 뜻을 모은 이들이 '일상을 돌려받고 싶은 사람들'('일돌사')이라는 이름으로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간식을 제공하고 있다. 일돌사에서 가장 많이 나눠준 간식은 혀에 닿는 순간 저세상 기분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하얀 가루, 설탕... 솔솔 뿌려진 '꽈배기'다.
집회에 나가본 분들은 알겠지만, 부스에서 자원 활동을 하시는 분들과 깃발을 들고 있는 기수들은 걸어서 몇 걸음이면 세계 음식 박람회도 아니고, 다양한 메뉴와 이야기가 담긴 푸드트럭들이 있는걸 알지만,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뭐든 튀기면 맛있다는데, 세 살부터 여든까지 싫어하는 사람 찾기 힘든 감자에 식물성 기름의 고소한 조합, 감자튀김
100% 쌀로 방앗간에서 갓 뽑아낸 가래떡은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매콤한 양념을 더해 한국인의 소울푸드에서 세계로 뻗어 가고 있는 쌀 떡볶이
쌀쌀한 날이면 여지없이 생각나는 어묵, 어묵보다는 국물이 더 끝내주는 어묵탕
어디 이뿐이랴. 소떡소떡 꼬치, 따뜻한 커피와 차, 그리고 등 따뜻하게 만든 핫팩까지 있다.
하지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세상이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데 보탬이 되고자 노력하는 부스 운영자와 기수들은 누리기 힘든 상황이다. 친절한 일돌사는 이걸 그냥 보고 지나칠 일 없다.
따뜻한 마음을 담은 달달한 꽈배기를 정성껏 포장해서 이고 지고, 움직이기 힘든 집회 참여자인 부스 운영자와 분들께 찾아가는 서비스, 배달을 한다.
그렇게 작은 친절을 받은 분들은 또 그들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친절을 베푼다. 세상은 그들이 나아가는 걸 막기라도 하듯, 때 아닌 눈이 오고, 예보에 없던 비가 와서 몸도 마음도 더 추운 날이면, 그들은 더 친절해진다.
겨울은 길지만, 누군가로부터 받은 작은 친절이 잠시나마 몸을 녹여주지 않을까.
가장 정이 많은 멤버들이 속한 공동체들이 제일 번영할 것이고,
또한 가장 많은 수의 후손들을 길러낼 것이다.
찰스 다윈 <인가의 계보>(1871)
아이에게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처럼, '일돌사'의 꽈배기 하나는 지친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작은 친절들이 모여, 더욱 따뜻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작은 친절 하나하나가 아이를 키우고, 더 나아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씨앗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