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이완하는 방법,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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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휴대폰에 기록된 걸음 수다.
한달 전부터 크고 작게 몸도 마음도 아픈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석증으로 인한 어지러움부터 열, 두통, 기침, 불면증까지 최근 일주일은 거의 누워있는 상태로 있었다.
아픈 몸을 간신히 추스려 고용센터에서 심리 상담을 받았다. 상담보다는 지금의 내 상태에 대해 강의를 듣는 시간에 가까웠다. 1시간 동안 스트레스에 대한 의미와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태 임을 인지해야한다는 상담 선생님의 이야기를 멍한 상태로 듣고 있었다.
스트레스: 팽팽히 조인다
어린시절부터 몸을 조일 줄만 알았지, 풀어본 적이 거의 없는 거 같다. 장애가 있는 가족과 산다는 건, 특히 정신 장애가 있는 가족과 산다는 건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다. 나의 불안과 긴장 수준은 스스로 알지 못했는데, 보통의 수준보다는 높은 수준이었던 거 같다.
상담을 받고 나와 천천히 걸으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상태가 계속 조여진 상태였나봐. 몰랐는데 긴장 속에서 지내고 있었나봐. 몸을 푸는 방법을 모르겠어. 몸을 어떻게 이완해야하지?"
내 말에 남편도 한마디 덧붙였다. 얼마전 커리어에 대해, 삶에 대해 어떻게 살아야 하지에 대한 생각으로 만난 인생 선배, 언니가 남편에게 했던 말을 전해주었다.
"혜경님은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간 거 같아요. 몸이 많이 긴장된 상태인 거 같아요."
다시 어지러워질까 걱정하며 조심스레 한발 한발 내딛으며 생각했다.
'힘을 뺀다는게 뭐지? 몸을 이완한다는게 뭐지?'
아이의 하교 시간, 그때도 머리는 맑지 않았다. 심지어 시내 버스의 멀미가 가라않지 않은 상태였다. 지끈거리고, 무거운 머리를 지탱하는 뒷목을 열심히 주물러 대고, 간신히 세워, 아이가 있는 돌봄 교실로 터벅터벅 천천히, 실수로라도 흔들릴까 조심하며 걸었다.
아이에게 엄마가 어지러우니 뛰지말자고 당부를 하고, 천천히 아무도 없는 모래 운동장을 함께 걸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몸이 긴장하고, 조여진 상태였나봐. 그래서 자꾸 아픈가봐, 어떻게 하면 엄마가 몸을 편안하게 할 수 있을까?"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누워서 휴대폰으로 엄마가 좋아하는 영상있잖아. 편안하게 누워서 보는거야."
"그런데 왜 휴대폰으로 봐야 해?"
"텔레비전은 내가 봐야하니까."
"어... 그래..."
아이에게 새로운 답을 기대했지만, 기대에 못미치는 답을 듣고, 10분도 채 되지 않은 하교 길마저도 힘들어 잠시 공원 의자에 앉아 쉬어가며 집으로 들어왔다.
불면증으로 선잠을 잔지 며칠 째다. 원래 잠귀가 밝은 편이긴 하지만, 이렇게 선잠으로 며칠을 보낸지 며칠이 되니,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그날도 일찍감치 누웠다.
아이는 금요일이니 신난다고 늦게까지 놀아도 된다고, 내일은 학교에 안가는 날이니, 자기는 늦게 잘거라며 넷플릭스에서 평소에 잘 보지도 않던 애니메이션 '안녕, 자두야'를 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나도 옆에서 볼이 통통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자두, 개성이 있는 자두네와 자두 친구들의이야기를 재미있게 아이를 꼭 안고 봤다.
그리고 몇개의 에피소드를 본 후, 아이는
"엄마 우리 잘까?"하고 티비를 껐다. 그리고 며칠간 괴롭히던 불면증을 신경쓰며 잠을 청해본다.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원하던 숙면은 아니었지만, 중간에 깬 잠은 다시 잘 수 있었고, 정확히 기억나지 않은 장면 몇개만 어렴풋이 꿈이었나보다하고 생각한 오랜만에 잠을 잔 날이었다.
불면증으로 몸 상태가 더 팽팽해지니, 몸을 이완하는 방법을 찾아, 명상이며, 산책이며, 스트레칭이며, 낮잠이며, 베개도 바꿔보고, 이어플러그도 껴보고. 다양한 방법을 써가며 그렇게 자려고 애썼는데, 통한 방법은 아이를 안고, 아이와 함께 특별할 거 없는 영상 몇개 보다가 누워 잠든거라니.
기대하지 않은 답이었지만, 아이가 맞았다. 특별할 거 없이 그날을, 그 시간을 보내면 되는거였다보다. 잘해내려고 애쓰기 보다는 그 시간을 '함께' 보내면 되는거였나보다.
그날 이후, 잠귀 밝은 나라서, 아이가 바스락거리며 뒤척일때마다, 굴러다닐때마다 깨긴 하지만, 다시 잠이 들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