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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하고 싶은 말

나에게 하고 싶은 말

가족 모두 기침으로, 고열로, 어지러움증으로 골골대고 있어, 온 가족의 면역력 증가를 위해 뭐라도 하자며, 남편과 아이 등교 후 산책을 하기로 한 첫 날이다. 집에만 있으면 더 아픈 거 같다고 엄마도 함께 했다. 오늘의 산책 코스는 100m도 채 되지 않은 동네 뒷동산이다. 여기 산지가 몇년인데, 남편은 처음 가는 길이라고 한다.

산책은 넌 기침하는 애가 왜 마스크는 안 썼니? 목이 따뜻해야한다. 옷을 좀더 여며라 등 엄마의 잔소리로부터 시작한다. 잔소리 할꺼면, 산책하지 하지 말라고 적당히 쏘아붙이는 큰 딸과 엄마의 대화가 마무리 될 쯤 나즈막한 산의 입구가 보인다.

1시간을 조금 넘게 걸었는데, 휴대폰에 찍힌 숫자를 보니, 9000 걸음 조금 넘게 나온다. 부지런히 걸었는데, 10000 걸음 채우기가 안되다니. 내일은 꽉찬 느낌이 나게 10000걸음은 채워야지 작은 결심을 한다.

몸이 안 좋아 외출은 자제하고 있지만, 지인의 부탁으로, 기업의 문제 해결사로 시니어 경력을 가진 제너럴리스트의 이력서에 대한 리뷰와 피드백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커리어를 고민하면서 참여했던 여러 코칭 수업, 그리고 테크 리크루팅 업무의 경험이 도움이 되는 시간이다.

이메일로 먼저 전달 받은 이력서는 보자마자 수없이 봐온 채용 플랫폼인 사람인의 템플릿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변하는 강산에 비유하는 긴 시간동안의 경험들이 가지런히 숫자가 붙여져 나열되어 있었다. 한 눈에 봐도, 이 분은 기업에서 필요한 일들을 잘 해내기 위해 노력하신 분이구나를 알 수 있었다. 보통 이런 분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미 몸으로 알고 계시기에 AI가 대답할만한 것들을 말씀드리진 않는다.

믿을만한 분의 소개지만, 처음 만난 분이라 이런 시간을 가질때면, 가급적 초반엔 내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특히 내가 생각하는 나의 연약한 부분을 초반에 말씀드린다. 꼬인 이력이라던지, 쉽지 않은 시장 상황이라던지,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제너럴리스트로의 경력,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 등에 대한 이야기다. 이는 짧은 시간 안에 상대의 신뢰를 얻기 위한 나름의 노하우다. 그리고 이 시간은 내가 나한테 하는 얘기라는 것을 강조한다. 누구든 내가 시간을 투자해서 한 일에 대해 꼬치꼬치 지적당하는 일은 기분좋은 일은 아니니까. 그러면서 그 시간은 내가 누군가한테 제공하는 시간이 아닌, 내가 상대로부터 이런 것들을 받는 시간이라고 말씀드린다. 그리고 내가 작성한 이력서들을 보여드린다. 잘 쓴 이력서의 케이스로 보여드리는 게 아닌, 몇가지 팁 정도만 공유드리기 위해서 말이다.

당연히 문제 해결사로의 이력을 가진 분은 공유해주신 이력서에서 어떤 부분을 업데이트 해야하는지 분명히 알고 계셨다. 내가 한 행동들은 그 생각을 다시 끄집어내서 그게 맞는 방향인 거 같다고 같이 믿고 응원하는 거다.

쉽지 않은 시장 상황에서 구직 활동을 하고 있는 동료로 응원하는 일, 그리고 오늘 진행되는 면접 전 한번쯤 생각하면 생각의 정리에 도움이 되는 한 두개 팁 정도 공유하는 일 정도가 내가 짧은 시간 안에 하는 최선의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시간 반동안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나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충분히 잘해왔다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 시간을 충분히 즐기라고, 몸에서 힘을 좀 빼도 괜찮다고.

그렇게 나와 약속한 일주일간 내 일상 정리하기 글쓰기 두번째 포스트를 마무리한다.

오늘의 돌아보기: 친구가 공유해준 팁으로 글을 쓸때, 시간을 정해놓고 수정없이 쭉 글을 쓰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발행 버튼을 누르라고 했는데, 오늘은 중간중간 방해공작들이 있었다. 유혹에 흔들렸지만, 발행버튼까지 눌렀다.